
나는 편식하는 어린이 였다.
어릴적 주식은 계란과 김이었고, 토마토케첩에 밥을 비벼먹기도 했다. 매운 음식은 잘 못 먹었으며,익은 김치도 꽤나 자라고 난 후부터 먹었다. 요사이는 먹방, 혼밥 등이 유행하며 개개인의 다양한 식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는 문화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 애기 입맛, 즉 편식하는 모습은 적지 않게 부담이 되었었다. 집에서도 부모님의 잔소리와 늘 함께 하였지만, 특히 외식을 하게 될 때 나의 편식으로 인해 메뉴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고민할 것도 없는 최고의 메뉴였던 음식이 있었는데, 이 메뉴를 먹으러 가는 날이면 그 전날부터 설레고, 먹는 동안은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었으며, 먹고난 후 꽤 오랜 시간 감흥이 남아 있었다.
바로 ‘경양식 돈가스’이다.
내 어린 시절(1980년~1990년대)에는 외식 메뉴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돼지갈비를 중심으로 설명되는 여러 한식메뉴가 외식메뉴의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조차도 아버지 월급 타신 날, 기념이 되는 날에나 할 수 있었다. 그런 시절에 소위 ‘돈가스’라는 메뉴는 정말 놀라운(sensational) 메뉴였다. 나와 같은 어른들의 추억의 메뉴로서 아직도 전국 곳곳에 오래된 맛집이 존재하고, 시대극 드라마에서 종종 소개되며 인기가 되기도 한다.
돈가스는 서양식 튀김요리를 기원으로 일본식 돈카츠를 거쳐 한국식 돈가스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식이라고는 하나 돈가스라는 메뉴, 그리고 경양식 돈까스 음식점 그 자체가 외국에 온듯한 분위기에서 외국에서나 먹을법한 음식을 먹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 어린 시절 기억에 경양식 음식점이란, 마치 바로크 시대의 건물처럼 고풍스러운 나무 인테리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나는 삐그덕 소리가 주는 오래된 느낌, 그리고 나비넥타이를 하신 종업원이 꽤 품위 있는 모습으로 음식을 내어주던 이미지이다.음식은 또 어떤가. 따뜻한 빵과 수프, 얇게 펴서 접시에
내어주는 밥, 바삭한 고기 위에 뿌려진 소스(데미그라스), 핑크색 소스가 뿌려진 샐러드, 수저가 아닌 나이프와 포크로 먹는 모습까지, 모든 것이 생소하고 감동적인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경양식 돈가스’를 사랑한다.
지금 시대의 돈가스는 일본식 정통 돈카츠가 주류로 생각된다. 질 좋은 돼지고기를 정성스레 튀겨내어 좋은 소금과 고추냉이를 찍어 먹으면서 미소된장국을 곁들인다. 물론 이것도 대단히 맛있고 좋아하지만, 나에게 1등은 여전히 경양식이다.
요사이 경양식 돈가스 음식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흔히 가는 번화가 혹은 음식점이 몰려 있는 곳에서는 경양식 돈가스, 특히 오래전 그 맛을 유지하고 있는 가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몇 가지의 체인 브랜드가 있기는 하나, 그 시절 그 맛을 그대로 구현하며 지금까지 운영하는 가게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가족여행 혹은 출장을 갈 경우 현지에서 ‘경양식 돈가스’를 검색하곤 한다.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그곳을 찾아가서 맛을 보고 나름 평가하고 즐기는 것이 꽤나 즐거운 취미거리다. 지난 주말, 강릉으로 여행을 간 나는 운 좋게도 198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경양식 돈가스 집을 찾아내었다.
‘ 고성 장미경양식’이다.
본점은 강원도 고성군에 있고, 나는 강릉 1호점을 방문하였다.(다음엔 기필코 본점으로 가보겠다)
평창에 놀러 간 김에 바다 구경하러 간 강릉에서 경양식 돈가스를 찾아 간 장미 경양식은 TV 프로그램 3대 천왕에 나와서 유명해진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since 1981이다. 1981년, 앞서 말한 그 시절이 바로 이 시기이다. 외식이 흔치 않던 시절 문을 열어 40년이 넘도록 운영해 온, 내가 찾아 헤매는 그런 음식점이다. ‘서양음식점’의 이미지로서 출발하여 40여년을 운영하며, 전 세계 각국의 메뉴가 즐비한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온 곳이라니, 이건 무조건 먹어봐야 한다.
역시나 그 시절 그 맛이다.
부드럽고 바삭한 고기, 달달하고 고소한 소스, 스프와 샐러도도 예전 그 맛이다. 입안을 상쾌하게 해주는 오이지와 옥수수콘 샐러드도 꿀 맛이다. 맥주 한잔 안 할 수 없어 아내에게 운전을 맡긴다. 그 아버지에 그 녀석들인지 아이들도 잘 먹는다. 강릉까지 다시 오기 쉽지 않으니 온 김에 다
맛을 보기 위해 주문한 정식메뉴(돈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가 부족할 정도다. 늘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는 아내가 조금 못마땅(까르보돈가스를 시키다니)하였지만 추억여행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제육볶음, 돈까스로 대표되는 아저씨들의 소울 푸드, 그 중에서도 경양식 돈가스를 유독 추억하시는 분이라면, 그리고 여차여차해서 강릉까지 놀러 오신 분이거나 강릉 주변에서 거주하는 분이라면(아마도 주변분들에게는 이미 오래된 맛집 이겠지만) 꼭 한번 들러 추억과 맛을 모두 맛보고 가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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